지난 5월 30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발레단의 <해적(Le Corsaire)> 공연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이번 무대는 2026 대한민국발레축제의 공식 초청작이자 수도권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여서 많은 발레 팬들의 관심을 모았는데요. 마린스키 발레단의 예술감독 엘다르 알리에브(Eldar Aliev)가 새롭게 연출한 버전으로, 기존의 클래식 <해적>과는 또 다른 신선한 시도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무대였습니다. 흥미로웠던 감상 포인트와 소소한 생각을 엮어 후기를 남겨봅니다.

ⓒBAKi

3막에서 2막으로의 변화, 에너지가 집약된 무대

이번 프로덕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3막 구성을 2막으로 간결하게 압축하여 극의 속도감을 높였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사적 변화도 눈에 띄었는데요. 원작에서 고난도 테크닉을 담당하던 충직한 노예 '알리'와 반역자 '비르반토' 캐릭터가 제외되어 극의 긴장감이나 해적단 내부의 갈등 서사가 조금 옅어진 듯 했습니다. 또 알리와 함께한 유명한 3인무(파 드 트루아)가 콘라드와 메도라의 2인무(파 드 되)로 바뀌다 보니 아쉬움이 들려던 찰나, 주역인 콘라드가 알리의 역동적인 안무까지 함께 소화해 내면서 두 주역 남녀무용수의 화려한 기량과 에너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무대가 완성되었습니다.

ⓒBAKi

마음을 사로잡은 연출과 명장면

시각적인 연출과 무대미술은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페트르 오쿠네브의 세련된 무대 디자인과 화사한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원작의 파샤의 정원 군무 장면을, 이번에는 콘라드가 메도라를 그리워하며 꿈꾸는 환상적인 순간으로 풀어낸 점이 무척 자연스러웠습니다. 화환을 든 무용수들이 정교하게 대형을 맞추며 추는 군무는 클래식 발레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BAKi

고전의 아름다움 뒤에 남은 소소한 단상

이번 공연은 초등학생인 자녀와 함께 관람하다 보니 공연이 끝나고, 극 중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시장의 묘사나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쉐이드 파샤의 희극적인 설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더라고요. 작품은 특유의 이국적인 매력과 유쾌한 연출로 익살스럽게 풀어내긴 했지만, 타 장르의 많은 고전들도 그러하듯 오늘날의 가치관이나 젠더 감수성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고전 그 자체로도 존중하지만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관객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BAKi

광주시립발레단의 저력과 미래를 보다

광주시립발레단은 1976년 10월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립발레단으로, 2026년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저력있는 발레단입니다. 특히, <고집쟁이 딸>, <라 실피드>, <코펠리아>처럼 국내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소중한 레퍼토리들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발레단이라 더욱 응원하는 마음이 컸는데요. 이날 무대를 지킨 메도라 역의 강은혜, 콘라드 역의 이상규, 귈나라 역의 공유민 등 무용수들의 탄탄한 테크닉과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광주시립발레단이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더욱 발전시키며 한국 발레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첨부파일 다운로드